행복의 유일한 방법


- D 카테기

행복의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바라지 않으며 남에게 `주는 기쁨`을 갖는 데 있음을 기억하라.

당신의 고민거리를 헤아리지 말고 당신이 받은 축복을 헤아리라.

남을 모방하지 말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답게 살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가 얻은 것을 자본으로 삼는 일이 아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손실로부터 유익을 얻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가짐으로써 피곤한 자기 집중에서 벗어나라.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을 띠울 일을 한 가지씩 하라.


* 꽁니아빠 생각 *
물론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
단지 강조하려는 의도일 뿐.
하지만 '베푸는 삶'이 최고의 방법인것은 확실하다.
;)

Posted by 그거아녀
:
그가 사는 이유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해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해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해라
- 오드리 헵번 Andrey Kathleen Ruston (1929. 5. 4 ~ 1993. 1. 20)



“제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봉사하기 위해서 입니다. 봉사를 하지 못한다면 저는 교회에 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신 분의 말씀이다. 그는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직장 일 때문에 한국에 3년 정도 머무를 예정이라며 그 동안 한국에서 다닐 교회를 찾는다고 우리 교회에 왔다. 그는 3년 동안 다닐 교회를 선택해야 했는데, 그의 선택 기준은 ‘그 교회가 자신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가’ 였다고 한다.

그의 한마디는 나에게 큰 감동을 줬다. 그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가 교회에 엄청난 봉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잘 담당하면서 교회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신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에 대한 그의 말 한마디는 우리에게 내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 내가 그 모임에 나가는 이유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자신이 복 받으려고 교회를 다닌다.
“나에게 복을 주세요. 내 사업이 번창하게 해주세요. 우리 아들과 딸이 이번 대학 시험에 꼭 합격하게 해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항상 바라고 구걸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빛과 소금처럼 살고 싶어서 교회에 다닌다. 내가 세상에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간다. 내가 보게 되고 믿게 되는 한가지 사실은 봉사하고 베푸는 사람이 더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우리는 작은 모임이나 작은 사회의 경험을 통하여 큰 세상의 지혜를 얻는다. 왜 교회를 다니는가의 질문처럼, 왜 회사에 다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어떤 사람은 단지 월급을 받기 위해 회사에 다닌다. 내가 월급을 더 받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회사의 일을 통하여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이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건 회사가 쓰러지건 문제 삶지 않고 단지 내 월급을 더 올려달라고 데모한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의존하며 사는 반면, 어떤 사람은 당당히 자신이 회사에 도움을 주겠다며 사는 사람이 있다. 내가 사장은 아니지만, 내가 회사를 키우고 내가 조직을 위해서 막내 동생이 아닌 큰 형과 같은 역할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보게 되고 믿게 되는 한가지 사실은 회사에 의존하는 사람보다는 회사에 당당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자신이 속한 어떤 모임을 생각해보자. 내가 그 모임에 가는 이유를 생각해봐도 내가 무엇이라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얻는 게 없다. 반면, 자신이 모임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고 유익을 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나는 성공하고 행복한 삶이란 거지처럼 구걸하는 삶이 아니라, 왕처럼 베푸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왕과 거지의 차이는 단순하다. 왕은 베풀고 거지는 구걸한다. 공짜를 기대하고 무엇인가 남에게 얻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은 한마디로 거지의 인생을 사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거지 근성을 버리라고 충고하는 거다.

반대로 왕의 삶은 백성을 보살피고 베푸는 삶이다. 왕은 명령하고 지시하고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다. 왕은 백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나의 삶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왕처럼 살 것인지, 거지처럼 살 것인지 말이다.

출처 : 박종하의 창의력 에세이

http://korea.internet.com/channel/content.asp?cid=435&nid=46951

* 꽁니아빠 생각 *
베푸는 삶...
언제 어디서든 가장 멋진 삶일 것이다.
;)


Posted by 그거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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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원들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유정 굴착 장치의 갑판 위에 서 있다.
바다 속에는 상어가 득실거릴 수도 있다.
선장이 갑자기 “물 속으로 뛰어 내려” 하고 고함을 친다.
하지만 이 고함 소리를 듣고 바다 속으로 뛰어 내리는 갑판원은 없다.
선장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만 가질 뿐이다.

그러나 갑판에 화염이 솟아오르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 어떨까?
선장이 소리를 치지 않아도 너도나도 앞 다투어 물 속으로 뛰어 들 것이다.
물 속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벌리고 사람을 노리는 상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타는 갑판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는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물 속으로 뛰어 내릴 수밖에 없다.

변화는 물속으로 뛰어 내리라는 고함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사람들이 진정으로 위기의식을 느낄 때 시작된다.
리더의 첫 번째 임무는 배에서 실제 화염이 솟구쳐 오르던 그렇지 않던 간에
모든 임직원들이 갑판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뜻한다.
장미 빛 안경을 벗어 던지고 현실을 냉철하고 잔인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하니웰사 CEO 보시디, ‘영원한 것은 없다’에서 인용

조영탁님의 휴넷 뉴스레터에서 인용했습니다.
휴넷! 강추입니다!
;)

Posted by 그거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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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문제는 시간의 한계도 함께 주어졌다는 것이다.

시간이 관여되면 긴장하게 되며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내가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도
더 정교하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선
너무나도 힘들다.

뭐...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정확하겠지만,
암튼 껍찔을 깨는 변화가 있지 않으면
극복하기 힘들 듯...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흔히 말하는 삽질 중이다.

조금 더 살펴보다가 도움을 청해야 겠다.

그나마 도와줄 사람이라도 있으니 천만 다행...

;)

 

Posted by 그거아녀
:
늘 출근하는 곳, 늘 생활하는 공간, 늘 수행하는 업무들...

이러한 것에 익숙해져 버리면
내가 사는 곳이 정글이라는 것을 곧 잊어버린다.

하지만 어느날 경기가 최악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안 보이던 전쟁터, 정글이 눈에 들어온다.

종종 살아남기 위한 방도를
평소에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나 자신은 그다지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다.

최악의 상황이 와서 다시 구직을 해야 한다면
힘들지 않을까?

힘들꺼다.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는 그런 꿈을 꿔보지만
아직은 희망 사항일뿐이요 그저 꿈일뿐...

하지만 나에겐 오늘이 있다.
(내일이 있다는것 보다는 현재인 오늘이 있다는게 더 나은 표현일 듯)
;)


Posted by 그거아녀
:
몸살 감기가 너무 심하게 들었다.

요즘 유행이라던데, 이런 유행은 너무 싫다...

앉아있을 힘도 없다...

오늘은 이만...

;(


Posted by 그거아녀
:
'몸은 건강할때 챙겨야 한다.'는 백번 옳은 말이다.

그래서 평소에 몸에 귀를 귀울이는 편이다.

이번 여행은 무리일꺼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이미 약속을 해두었던 터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몸에 무리가 왔고
최근 몇개월만에 이렇게 아프긴 처음이다.
회사까지 하루 쉬었으니...

어떻게 보면
평소에 내 몸에 귀기울이면 훈련이 잘 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지도...;;

제일 중요한건 필요할 때 적절하게 쉬어주는 것.
상황이 여의치 않아 쉬지 못하는 것이
당장 몸에 무리가 오므로
가장 힘든게 아닌가 싶다...

;)

Posted by 그거아녀
:
이 것은 그토록 강조되어야 하는가?
본인의 몸이 부서지더라도
실천을 반드시 해야하는 것인가?

'희생'과 '봉사'라는 덕목은
너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 같다.

오늘은 정말 몸이 안 좋아서
바로 집에 올라오고 싶었으나
같이 컨디션이 안 좋은 다른 분들도 다 계시고
'희생'과 '봉사'라는 덕목이 계속 강조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위인, 성인들의 더욱 어려운 상황에서의 예들은
'희생','봉사'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부끄럽다.
하지만 너무 힘들다...

:)


Posted by 그거아녀
:
주연이 아닌 조연.
그 조연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전라도 광주에 갈 일이 생겼다.
거기서 난 조연이었다.
물론 주연이 되지 못하여
조연인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주연이 될 수 있지만
아직 같이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정확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조연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연이 아닌 경우에는
어디든 잘 나서지 않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나섰더니
결국 이러한 느낌을 받게 되어 버렸다...;;

:)


Posted by 그거아녀
:
'인간은 고독한 동물이다.'

오늘 점심을 먹다
'나 대신 누가 밥을 먹어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 대신 화장실에 가 줄 수도 없고
누가 나 대신 울어줄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어울리려는 습성을 가졌을 것이다.

어울려 웃고 놀고 즐기고 울면서
고독을 잠시나마 잊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의견이든 찬반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그래서 '고독을 잊기위한 어울림'에 반박을 한다면
'인간은 어울리는 능력이 있기에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울림'을 타고나는 인간과
'어울림'을 타고 나지 못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오히려 태어날때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던 능력인데
성장과정에서 발달, 쇠퇴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가?

;)

Posted by 그거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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